보건복지부(장관 조규홍)와 국립재활원(원장 강윤규)은 최근 ‘2023년 장애인 건강보건 통합성과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선 장애인 건강보건관리사업 활성화 유공 25점, 장애인 건강보건관리사업 우수사례 공모전 35점, 대국민 이용수기 공모전 27점에 대한 시상이 있었다.

‘재활뉴스’는 2023년 장애인보건의료센터 이용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인 ‘보건복지부장관상’ 2편을 연이어 게재한다.

저는 강원도 태백시에 거주하는 올해 44살 권○○입니다.

17년 전, 교통사고로 인한 경수 손상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가기 힘든 중증 사지마비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고 이전, 학창 시절에는 태권도 선수로 대회에 나가서 입상도 해보고 군대에서는 유격 조교로 빨간 모자를 쓰고 올빼미들을 괴롭히는 악당이 되었으며 미국 영화 ‘람보’에서 람보가 사용하는 10kg이 넘는 M60기관총 사수로 군 생활을 하였습니다. 제대 후에는 막노동과 1톤 탑차를 타고 장사도 해봤으며 안경렌즈 만드는 공장에서도 일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한 이유는 사고 이전엔 저도 누구보다 건강하고 튼튼한 청년이었으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한순간에 장애인이 된 저는 좌절하였고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그냥 사고 나던 순간에 바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안 해본 날이 없습니다. 병원에서 재활하는 동안 어머니는 저를 돌보기 위해 작은 보호자 침대에 누워 쪽잠을 주무셔야 했고, 아버지는 태백에서 수도권까지 저희를 보기 위해 3시간이 넘는 거리를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은 저 하나 때문에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들로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별다른 회복세가 보이지 않자 제가 생활할 수 있도록 경사로를 만들고 문턱을 제거한 집으로 돌아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병원과 환경이 많이 달라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 반경이 줄었고, 결국에는 제 방에서 그냥 밥만 축내고 게임이나 하며 의미 없는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내 힘으로는 대소변도 하나 해결 못 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저를 돌봐주시던 어머니께 툭하면 신경질 부리고 살았으며 그냥 하루라도 빨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를 돌봐주시던 어머니가 허리에 무리가 와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일은 저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프게 된 이유의 90%는 저 때문이라는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저를 돌봐주시는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제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동휠체어, 리프트 등 기술이 발전하여 도움이 되는 많은 것들이 생겨 있었고, 그것들이 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태백시보건소 주무관님을 통해 강원특별자치도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를 소개받았습니다. 센터 선생님들을 만나고 저에게는 여러 가지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휴대전화로 조작하는 조명, 블라인드 등 스마트기기를 설치해 주셔서 매번 누군가가 해주던 일들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밤에 불을 켜고 싶어도 자는 가족을 깨우기 미안해 참은 적도 많았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니까요.

또한 ‘장애인 건강 주치의’라는 제도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집안에서의 준비과정뿐만 아니라 차량 예약/이동, 휠체어 접근 가능성 유무 확인 등 하루 동안 보호자의 도움과 모든 시간을 쏟는 과정이 필요한데 필요할 때, 방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원이 지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세미나’ 패널 참여와, 강원지역의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모인 ‘협의회’에 위원으로 함께 자리하여 의견을 지속적으로 나눌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는 저나 다른 장애인 분들을 위해서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같이 생각해주고 소통해 나가는 기관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장애인들을 위한 연구 개발을 위해 지역에서 많은 분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처지이지만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돼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현재는 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나이도 많은 장애인이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전에는 어머니가 아프시기 전까지 방 안에 틀어박혀서 손발도 못 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생각했었고 어머니가 아프신 이후에도 뭔가를 해보고 싶긴 한데 시작해볼 용기도 없었으며 한다고 되겠나 하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 선생님들을 포함한 많은 분이 용기와 도움을 주셔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이 되고 10년이 넘게 방구석에서만 누워 쓸모없이 살다가 밖으로 나와 보니 우리나라에 그동안 몰랐던 제도도 많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예전의 저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안에만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밖으로 나와서 용기를 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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